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페이지하단 바로가기

미순교성지에 재현된 진둠벙.

페이지 정보

작성자 : test 작성일 25.04.12

test123@google.com

본문

▲진둠벙 해미순교성지에 재현된 진둠벙.


해미천과 진둠벙에선 집단 생매장이 자행되었다.


ⓒ 이영천 도시계획은 교구 요청에 따라 약 3만㎡를 종교용지로 지정했고, 천주교 측의 직접 매입에 따라 성지 영역이 획·결정되었다.


순교로부터 1백 년도 훨씬 더 지난 후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읍성 복원이 일찍.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진둠벙맞은편은 커다란 무덤 모양의해미순교성지기념관 유해참배실이다.


생매장터를 향하던순교자들의 모습을 담은 조각이 순례자를 먼저 맞이한다.


기념관을 한 바퀴 돌아 유해참배실에 이르렀다.


순교자들의 유해 너머로 양반과 상민, 여인과 아이 그리고.


회장이해미생매장순교현장을 목격했던 이주필, 이병준, 임인필, 박승익 등의 증언에 따라해미조산리진둠벙과 여숫골 숲정이,해미하천 변에서.


상홍리에 있던해미 순교자들의 유해는 1995년해미순교성지로 이장됐다.


바로 신부는 1946년 미사 중 결핵 환자가 성체를 삼키지 못하고 뱉어내자 이를.


해미순교성지는 1866년 병인박해 이후 1882년 사이에 진행된 천주교 박해 때 충청도 각 고을에서 붙잡혀온 천주교 신자 1000여 명이 생매장당한 곳이다.


신자들을 생매장했던진둠벙과해미천옆에 생매장당한 이름 없는순교자의 묘, 유해 발굴지에 조성된 노천성당, 서문 밖순교지에 있던 자리개돌 원석이 보존돼.


두들기와진둠벙은순교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단어들이다.


죽산성지인근 지역에는 ‘두들기고개’가 있다.


죽산은 조선시대에 도호부가 있던 곳으로.


해미국제성지에 있는진둠벙은 신자들이 신앙 때문에 생매장을 당한 곳이다.


박해 당시 형졸들은 수많은 신자들을 묶은 채로 이곳 물웅덩이에 수장시켰다.


해미국제성지의 성당과 유해 참배실에서순교자들을 기리며 기도하고진둠벙연못과 자리개돌 앞에서 묵상하면 그분들의 고귀한 희생이 손에 닿을 듯하게 느껴진다.


지금도해미국제성지곁으로 유유히 흐르는 물을 보면 우리가 간직한 신앙이 무수한순교자들의 희생을 통해 이어져 왔다는 것을 알 수.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해미성지진둠벙(교인을 묶어 던져 죽인 웅덩이) 앞에서 “센자노메(senza nome·이름 없이), 센자노메…”라고 울먹이기도 했다.


서산시는 무명순교자의 묘,성지기념관, 성당이 있는해미성지3만㎡를 종교의 메카로 키우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다.


2013년 4만 5400여명이던 방문객 수가.


그래서 이곳을 '진둠벙'이라 불리어진다.


https://www.raind.co.kr/


이어 우리는 '피의 제사장'이라는 '자리개돌'도 보았다.


읍성의 서문 밖순교지에서는 군문효수, 배지사형.


돌다리위에 묶인순교자를 군졸들이 들어 올려 머리와 가슴을 어스러지게 하는 처형방법이다.


지금도 그 돌이 처연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3만여㎡ 부지의해미성지에는진둠벙등 역사적 현장과 함께 무명순교자의 묘,성지기념관, 성당 등이 자리하고 있다.


조선시대 천주교인들의 처형은해미지역을 관할하던 관아가 있던해미읍성에서 이뤄졌다.


해미성지는해미읍성에서 서쪽으로 700m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2014년해미성지를 방문한.


특히 순례길은 기존 가톨릭순례길의 종점구간인 세계청년문화센터부터해미읍성을 거쳐해미국제성지내진둠벙(순교자들이 수장됐다고 알려진 연못)까지 이어지는 1.


7km구간으로,순교자의 압송로를 현대에 맞게 복원하는 형태로 조성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서산시는 '해미국제성지세계명소화 추진위원회'를.